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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온의 서고

[시] 오늘도 버리지 못했다: 김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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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아 더는 신을 수 없어 
신발장 구석이나 차지하고 있는 
한갓 쓰레기에 불과한 것들이지만
함부로 버리지 못했다
나를 데리고 걸어온 숱한 길을 생각하면
살아온 날들조차 폐기처분되는 것 같아
함부로 버리지 못했다
가야할 길만을 걸어온 것도 아닌데
가고 싶지 않은 길도 가고
가서는 안 될 길을 간 적도 많은데
 
그래도 나를 데리고 온 길이
한순간에 지워질 것 같아
여태껏 버리지 못했다
어쩌다 술자리에서 바꿔 신었을지라도
 그 사람이 걸어온 당당함 혹은 비틀거림이 
 나로 하여 사라질 것만 같아
함부로 버리지 못했다
 
신발장을 열 때마다 아내는
신지도 않는 걸 왜 모셔 두냐며 핀잔이지만
때가 되면 버린다 얼버무릴 뿐
언제 버려야 하는지
꼭 버려야만 하는지
나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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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1 07:3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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