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들라크루아 : 격노한 메데이아
2014-02-05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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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2
아온님의 댓글
마루밑다락방님의 댓글의 댓글
황금양피를 찾으러 콜키스에 온 영웅 이아손에게 반하게 되었으며, 이아손을 없애려는 아버지의 의도를 알고는 그들이 황금양모를 취하게 큰 도움을 주었다. 메데이아는 이아손과 함께 그리스로 도피를 했는데 자신들을 쫓아오는 아버지에 대항해 동생인 압시르토스를 죽여 콜키스의 배가 시신을 수습하는 동안 먼 바다로 도망칠 수 있었다. 이에 신들이 분노하여 항해가 어렵게 되자 메데이아는 고모인 키르케를 찾아 키르케의 도움으로 신들의 노여움을 잠재웠고, 그제서야 순조로운 귀향을 할 수 있었다.
한편, 메데이아는 지옥의 여신이자 모든 주술과 마술을 총괄하는 여신 헤카테를 숭배하는 마법사이기도 했다. 메데이아는 황금양피를 가져오면 왕위를 넘겨주겠다던 펠리아스가 약속을 지키지 않자, 마술로 그를 속여 솥에 들어가 죽게 만들었다.
이에 이올코스의 백성들이 분노하여 메데이아와 이아손은 아이들을 데리고 코린토스로 피하였는데, 코린토스 왕 크레온의 배려로 편히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이아손이 코린토스의 공주 글라우케와 결혼하게 되었고 이에 분노한 메데이아는 마법을 건 옷을 공주에게 보내 글라우케와 크레온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자신의 아이들 또한 죽게 했다.
그 후, 메데이아는 이아손을 떠나 테세우스의 아버지인 아테네왕 아이게우스 1세와 결혼한다. 테세우스가 찾아오자 그가 아이게우스의 자식임을 알아보고는 독주를 먹여 죽이려다가 실패하고 아들인 메도스와 함께 아테네를 떠난다.(메도스가 아이게우스의 아들이라는 설과 이아손의 아들이라는 설이 있다.)
메데이아는 이후에 고향인 콜키스로 돌아갔는데 그때는 숙부인 페르세스가 아버지 아이에테스를 몰아내고 콜키스를 장악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우여곡절 끝에 그를 죽이고 왕위를 되찾았다. 이후 아들 메도스가 콜키스를 메디아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그곳의 왕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일설에는 메데이아가 사후에 죽은 자들이 머무르는 축복의 땅인 엘리시온에 들어가 영웅 아킬레우스와 맺어졌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