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고야 : 승마하는 마리아 테레사
2014-04-14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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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밑다락방의 서고] 초승에 뜨는 달은 ‘초승달’이 옳다. 물론 이 단어는 ‘초생(初生)’과 ‘달’이 합성한 경우이나, 어원에서 멀어져 굳어진 경우 관용에 따라 쓴다는 원칙에 따라, ‘초승달’이 올바른 표현이다. 마치 ‘폐렴(肺炎), 가난(艱難)’ 등과도 같은 경우이다.201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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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아일랜드... 예이츠의 고향. 가장 늦게 도달한 기독교(카톨릭)에 가장 심취하였고 중세 수도원 운동이 크게 부흥하여 역으로 대륙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곳... 중국보다 성리학에 더 미쳤던 한국..자본주의의 실험재료가 되어, 자국의 식량이 부족하여 백성은 굶어죽는데도 영국으로 식량을 수출해야 했던 나라. 맬더스 인구론의 근거가 됐었고.. 영국의 식민지였으며 분단의 아픔을 격고 있는 나라.. 참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은 나라입니다.2015-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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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신영복 교수... 진정 겸손한 글을 쓰는 분이지요.소외 당한 자, 시대의 약자들에 대한 이해가 깊은 분이고. 그들을 대변 또는 위로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작가들 중의 하나이지요.2015-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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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과학이 본연의 임무대로 오류들을 이리저리 쳐내가다 보니 알맹이가 하나도 안 남은 형국이되었습니다. 그러니 과학 때문에 목적을 상실했다는 말이 나왔고, 도구에 불과한 과학이 미움을 받는 묘한 지경이 되었습니다만... 그게 과학의 잘못은 아니지요. 만들어진 요리가 맛이 없는게 잘드는 칼의 잘못입니까? 재료가 형편없었던 까닭이지요.2015-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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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물론 ‘목적 없는 세계’라는 아이디어가 ‘신앙의 부재’와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겠지만, 어떤 목적으로 움직이는지 회의를 주는 세계는 신앙심을 약화시키는 무신론을 철저히 방조하고 있음엔 틀림없는 것 같다. -------------음... 아직 옛날 습관이 남아있는 어투이군요...전지전능의 무한자는 인간이 알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즉 불가지의 존재이지요. 이 불가지의 존재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도 당연히 불가지입니다. 과학은 이 불가지의 세계를 다루지 않습니다. 그랫다가는 오컴에게 면도날로 난도질 당합니다. ㅋㅋㅋ2015-04-05
댓글목록2
아온님의 댓글
마루밑다락방님의 댓글의 댓글
독일의 여황제(재위 : 1740~1780). 헝가리 및 뵈멘(보헤미아) 여왕, 오스트리아 대공(1740~1780) 카를 6세의 딸. 빈에서 출생. 1736년 로트링겐공(公) 프란츠 슈테판(후에 프란츠 1세)과 결혼, 1740년 부왕 사후에 합스부르크가(家)의 '기본 상속령 Pragmatische Sanktion'에 의해 즉위, 오스트리아를 계승했으나 프랑스ㆍ프로이센ㆍ작센ㆍ바이에른ㆍ에스파냐 등의 반대를 받고, 여기에 오스트리아 계승 전쟁(1740~48)이 발발,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대왕은 슐레지엔에 침입해 왔다. 이에 그는 영국과 동맹, 선전하여 아헨 조약을 맺고(1748) 계승 전쟁을 끝내는 동시에 그 지위를 확보했으나 결국 이탈리아에 있어서의 오스트리아 영토는 나폴리 왕국의 소유로 되었다. 이후 그는 행정을 개혁하고 군대를 정비, 또 상농업의 진흥에 주력하여 국력을 증대케 했다. 한편 슐레지엔 탈회를 목적으로 러시아와 동맹하고 장년의 전통을 깨치고서 프랑스와도 제휴, 외교의 혁명을 이루고 1756~63년 프리드리히 대왕과 싸웠다(7년 전쟁). 패배하여 슐레지엔은 완전히 프리드리히의 소유로 되었으나 여걸(女傑)로서의 이름을 알리고, 오스트리아를 근대적 국가로서 통일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치적 중 중요한 것으로는 대학의 개혁(1749)ㆍ법전(法典)의 개정(1769)ㆍ고문(拷問)의 폐지(1776)ㆍ모범적인 소학교의 창설 등 외에, 위에 기록한 오스트리아를 근대적 국가로서 통일하는데 성공한다. 그는 16자녀를 낳았는데, 그들 중에서 요제프 2세ㆍ레오폴드 2세는 즉위하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왕후가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리아 테레지아 [Mari´a There´sia] (인명사전, 2002.1.10, 민중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