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꾼 인물 또는 사건] 게르만족의 이동
본문
게르만족..
히틀러가 아리안의 적통으로 가장 우수한 혈통을 가진 세계의 지배자가 될 운명을 가졌다고 뻥을 쳤던,
푸른눈에 금발, 창백한 피부를 가진 체구가 건장한 종족.
하지만 이들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독일 북부지방에서 유래한 게르만어를 사용하는 그냥 야만족이었다.
사실 민족이라는 개념은 원래 비슷한 언어를 쓰는 여러 종족을 묶어서 부르던 개념으로
고대의 민족은 혈통 개념이 아니라 어족 개념이다.
따라서 현대의 민족 개념으로 게르만족을 본다면 게르만어를 쓰는 여러 종족들의 집단을 의미한다.
아무튼 이 족속들은 유럽 북부및 동유럽에 거주하면서 주로 사냥과 목축 그리고 약탈로 먹고 살았다.
서유럽에도 만만찮은 야만족인 켈트족이 살았는데 이들은 로마에 동화되어 정주민족화한 반면
게르만족은 힘든 일을 싫어하는 야만족답게 약탈을 업으로 삼아 살았다
로마에 비해 기술도 부족하고 조직력도 약했으나 타고난 야만성을 십분 발휘하여
로마에 끊임없이 시비를 걸었다.
로마는 이 야만족이 로마역사 내내 골칫거리였으나 정복도 동화도 불가능하였으므로
라인강과 도나우강을 경계로 하여, 그저 방벽을 쌓고 지키며 못들어오게 막는 수밖에 없었다.
만리장성을 경계로 끊임없이 치고 받았던 중국과 흉노와의 관계의 유럽판이라할 수 있다.
아무튼 이 야만족들은 라인강과 도나우강 동편에 떼지어 살았는데
쥬트, 앵글, 색슨, 프랑크가 가장 서쪽이었고 중간지대엔 부르쿤트 반달 서고트, 그리고 가장 동쪽엔 동고트가 살았다.
현재의 동유럽 지역이다.
이 동유럽 지역에서 가끔 로마를 침입하여 혼쭐이 나기도 하엿지만,
주로 지들끼리 치고 받고, 뺏고 뺏기며, 아웅다웅 나름 열심히 살던,
이 게르만어를 쓰는 야만 민족들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중국에서 쫒겨난 흉노가 이를 부득부득 갈며 나타난 것이다.
등자를 장착한 말과 함께...
가장 먼저 벼락을 맞은 것은 가장 동쪽에 있던 동고트족이었다.
유럽의 깡패 노릇을 하던 게르만족이 흉노를 대접해서 곱게 항복하였을리는 없고 얘들도 격렬히 저항하였다.
그러나 그 저항도 무색하게 동고트는 바로 패하여 왕이 자결하고 영토를 빼았겼다.
서고트도 저항하였으나 주력군이 박살나는 참패를 겪자
동고트 꼴이 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도망하여 로마에게 보호를 간청하며
지금의 불가리아 지방으로 이동하였다.
이게 첫번째 이동이다.
방벽너머에서 천지가 개벽하는 줄 모르고 단꿈에 젖어 있던 로마에도 불똥이 튀기 시작했다.
훈족의 서진에 따라 게르만족들이 일부는 항복하고 일부는 도망해서 로마 영내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 게르만족을 막아선 것 또한 게르만족이었다.
로마의 주적은 방벽 바깥의 게르만족이 아니라 페르시아로 대표되는 유프라테스강 동쪽의 세력이었다.
이 당시는 사산조 페르시아가 주적이었고 로마의 군사력은 이쪽에 주로 몰려있었다.
게르만과의 경계는 충성을 맹세한 게르만족 출신 용병들이 맡고 있었으며
실제로 이들은 충성스럽게 임무를 수행했다.
훈족이 불가강을 건너면서 시작된 게르만의 이동은
훈족이 사산조 페르시아를 공격하고 아나톨리아를 약탈하느라 잠시 소강상태였으나
투나 강변에 훈족이 그동안 복속시킨 반달족과 나타나자 다시 화끈해지기 시작했다.
반달족과 훈족의 공격을 받은 서고트는 이번에도 도망하여 이탈리아 북부로 몰려들었다.
로마는 전력을 다해 겨우 방어할 수 있었으나
다음의 훈족에게 밀려난 제 부족의 연합 공격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어서
이탈리아 전역이 유린되는 비극을 맛보야했다.
로마는 별수없이 적의 적인 훈족에게 원병을 청했고 훈족은 이에 응해 게르만 연합군을 패퇴시켰다.
난리의 원인 제공자에게 구원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던 로마 지도층의 고뇌가 안쓰럽다.
패퇴한 연합 부족은 당연히 서쪽으로 다시 이동하였다.
서로마와 동맹을 맺게된 훈족은 동로마를 본격적으로 두들겼다.
동로마도 최선을 다해 여러가지 방법으로 훈족에 대항하였으나 번번히 깨지고 조공국으로 전락하였다.
옛날 흉노가 한나라에 써먹은 방법을 그대로 흉내낸 꼴이다.
훈족은 동로마의 조공을 받으며, 로마 주위의 종족들을 복속 또는 추방시키고, 돈받고 서로마도 지켜주면서 근 백년을 휘져었다.
독일의 유명한 서사시 '니벨룽겐(Nibelungen)의 반지'는 이 당시 부르군트족과 훈족의 전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전투에서 부르군트는 군디카르왕을 포함해서 20,000여명이 전사했으며
이후 부르군트, 바야부르, 프랑크, 롱고바르드족 등이 새로이 훈의 영향하에 놓이게 되었다.
훈족의 공세는 아틸라왕 시절 극에 달하였으나 아틸라왕 사후 갑자기 붕괴되었다.
훈족의 공세가 끝났을 때 서로마는 숨이 막 넘어가기 직전이었고 동로마는 완전히 지쳐있었다.
그때까지 훈족에게 이리 저리 채이던 게르만족의 세상이 온것이다.
이태리 반도는 476년 서로마제국을 멸망시킨 오도아케르를 제거한 동고트가 다스렸고,
알프스 이북에서는 라인강 하류지방에 가장 강대한 게르만족의 왕국으로 프랑크왕국이 등장했다.
이외에도 각지의 로마지역에 군소 게르만 왕국이 등장했다.
반달족, 서고트족, 부르군트족, 앵글로색슨족, 롬바르드족 등이 그들이다.
중세가 시작 되었다.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동거리로 보면 중국북부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이동한 흉노에 비하면
동유럽에서 서유럽으로 옮긴 게르만족의 이동거리는 이동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워낙 많은 민족들이 움직여서 대이동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나, 이동한 민족도 모두가 짐싸서 떠난 것도 아니고...
실제로는 유럽 내에서 일어난 북새통일뿐이며 유럽의 지배민족이 바뀐 사건일뿐이다.
강도가 들어서 이웃집으로 피신했다가 주인 내쫒고 집차지한 꼴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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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1
마루밑다락방님의 댓글
"하지만 이들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독일 북부지방에서 유래한 게르만어를 사용하는 그냥 야만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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