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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온의 서고

[역사를 바꾼 인물 또는 사건] 몽골에 점령되지 않은 나라 또는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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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전사상 몽골군만큼 압도적인 느낌을 주는 군대는 흔치 않다..
알렉산더, 카이사르, 아틸라...이 정도나 비교가 될라나? 그래도 얘들보다 몽골군이 더 쎈느낌이다..
이 엄청난 압도감때문에 마치 몽골군은 천하 무적처럼 느껴지지만 패배하거나 점령에 실패한 나라도 많다.
우선은 우리나라하고도 연관이 있는 일본이다.
쿠빌라이는 남송과 전쟁을 할때 송을 고립시키기 위해 일본에게 송과의 관계를 끊고 원에 복종하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십대에 불과했던 일본의 쇼군은 겁도 없이 거부했고....
수차에 걸친 협박에도 불구하고 무시로 일관하였다.
이에 열받은 쿠빌라이가 고려를 앞세워서 일본으로 쳐들어간 게 일본 원정이다.
1차와 2차로 나뉘어 쳐들어갔는데 두번 다 태풍으로 연합군이 맛이가서 원정이 실패하였다.
1차에는 몽골과 고려군만의 연합군이었는데..
마치 유럽의 기사를 연상케 하는 무사도의 일본군과 전쟁 전문가의 싸움이었으므로 게임이 될 수 없었다.
초전부터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거의 완승할 뻔했으나 태풍으로 배가 왕창 부서져서 퇴각할 수 밖에 없었다.
2차 원정은 옛송의 병력 10만까지 포함하여 대규모를 진행하였는데
이번에도 김방경이 지휘하는 고려군은 선전하였으나 태풍에 또 발목을 잡혔다.
남송의 병력 10만은 배에서 내려보지도 못하고 배의 침몰과 함께 다수가 사망하였고
겨우 상륙한 곤죽이 다된 병사들은 일본의 적개심이 가득한 칼날에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일본 애들도 일차때 피흘리며 제법 배웠던 모양이다.
14만의 연합군중 생환한 병사는 3만에 불과했다.
쿠빌라이는 3차원정도 계획했으나 베트남이 더 열받게 하는 바람에 칼끝을 베트남으로 돌렸고...
덕분에 일본은 몽골의 침입을 격퇴한 자랑스러운 역사를 갖게 되었다.
태풍때문에 이겼건 뭐 때문에 이겼건 이긴건 이긴 것이다...
괜히 끌려가 칼춤을 췄던 고려군이나 칼춤도 제대로 못추고 죽는 역할만 했던 남송군만 한심하게 되었다.
일본은 재수가 좋아 몽골을 물리칠 수 있었으나 이때 몽골이 입은 피해는 얼마 안되었다...
몽골군에서 동원된 병사나 자원이 극히 적었기 때문이다...고려와 남송만 피박을 썼다.
그러나 몽골이 전력을 다해 공격을 가했으나 모두 물리친 국가가 베트남이다.
진짜 자랑스러워할만 하다.
쿠빌라이는 남방해상로를 장악하기 위해 베트남을 원했다.
몽골은 3번에 걸쳐 베트남을 침략했는데 세번 다 수도를 내줘야했다.
일본 침략과 달리 제대로 준비된 침략이었으므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차 침략에 50만을 동원했다고 하는데.. 과장했다 해도 굉장한 병력이었을 것임은 확실하다.
쿠빌라이가 항복한 남송군을 소비도 할겸 영토확장도 하고 뭐 이런 다목적에서 침략한 것이 아닐까?
이차 일본 원정도 마찬가지고...음...
그렇다면 반은 성공한 셈이다.
베트남을 침공한 몽골군은 쎄긴 셌다. 일단 수도는 바로 함락된다.
하지만 수도가 함락되었다 해서 전쟁에 진 것은 아니다.
수도를 점령한 몽골군은 무더운 기후와 식량부족에 직면하게 되었고 결국 스스로 후퇴하다가 역습에 말려 대패하고 패주한다...베트남도 고려처럼 청야 전술을 썼나보다.
이 말은 베트남이 게릴라전을 수행했다는 말이다.
비록 수도는 잃었어도 게릴라를 운용해서 적군의 추가 보급을 막고 베트남군의 전열을 정비해 역습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고려처럼 본토의 백성를 방치하면 이런 작전은 꿈도 못꾼다...
게릴라전에는 일반 백성의 협조가 필수적이고 상당한 지략이 필요한데 민심이 이반되어 있으면 불가능하다.
이 당시 쩐왕조는 백성들에게 상당히 괜찬은 왕조였나 보다.
쩐흥다오의 왕조가 위험하다는 호소에 전 민족이 단결하여 몽골과 싸우기를 결의하였으니 말이다.
이차 침공때에는 베트남의 전국토가 거의 유린되었으나 이렇게 항쟁하여 물리쳤고
해군까지 포함된 3차 침공도 역시 수도를 내주었으나 
명장 쩐흥다오의 육해에 걸친 활약으로 수군을 박살내고 육군은 매복으로 끝장을 내어
자랑스러운 역사를 쓸 수 있었다...
베트남도 한 걸 고려는 왜 못했을까? 최우... 음...강화도로 가는게 아니었다...
캄보디아도 베트남 2차 침공때 먼저 침입을 받아 수도를 내주었으나 게릴라전으로 저항하여 물리쳤다.
베트남 덕분이긴 했어도 어쨌든 승리는 승리다.

이외 몽골의 침입을 막아낸 나라는 많다.
대표적인 예가 캅카스 지역인데...체첸의 고향으로 알려져있다..
백인의 발상지라고도 하고...페르시아 속담에 왕이 미치면 캅카스로 전쟁하러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형이 험하고 아주 호전적인 민족들이 살고 있었다.
이 살벌한 동네로 수부타이와 제베가 쳐들어갔다가 거의 죽을 뻔했다고 한다.
결국 그 대단한 몽골군도 캅카스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지금의 그루지야인 조지아국과 동맹을 맺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몽골은 쿠빌라이때 자바섬에도 쳐들어갔는데 격퇴당하였고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 역시 명군 바이바르스의 활약으로  몽골 세력을 시리아에서 격퇴했다.
인도의 노예 왕조, 할지 왕조, 투글루크 왕조도 몽골의 도전을 받았으나 치열하게 싸웠고 결국 견뎌냈다.
폴란드도 초장에 무지 깨졌으나 몽골의 사정이야 어찌되었건 성공적으로 저항하여 지켜내었고...
노보고르드는 습지가 많아 몽골군이 공격을 단념하는 바람에 무사할 수 있었다...계절이 도와 줘서...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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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1 07:3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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