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꾼 인물 또는 사건] 몽골의 4차, 5차, 6차,7차 침입
2014-08-18 13:28
10,919
0
0
본문
항복조건이 고종의 입조였다는데....고종의 입조를 이 핑계 저 핑계대며 이행하지 않았고
이런 저런 사기를 치며 시간을 끌었다.
몽골은 몽골대로 남송 일이 잘 안풀려서 죽을 맛이었고...
그래서 더 이상의 침략없이 8년 간의 휴식기를 가질 수 있었다.
최우는 이 기간 동안 몽골의 주 침략로에 성을 쌓거나 보수하면서 다음 전쟁을 준비 하였는데..
다음 침략에서 몽골이 경로를 바꾸는 바람에 무용지물이 되었다.
성 쌓느라 백성들만 헛고생을 죽도록 한 셈이다....쩝..
오고타이가 심장마비로 죽고 그 뒤를 성질더러운 구육이가 잇게 되면서 또 한 번의 침략을 맞게 된다.
다행히 구육이의 명이 짧아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으나
1년이 채 안되는 동안 이놈들이 진을 쳤던 경기도는 초토화되었고 충청, 전라, 경상지역까지 약탈을 당하였으며 강화도 수성을 위해 피를 흘려야했다.
몽골은 구육이가 죽자 선철군 후입조의 조건으로 철수 한다.
1247--1248년 사이의 일이었다
최우는 입조할 생각이 전혀없었고..
그저 고식적인 조치로 일관하다가 뒈져버렸다...염병을 할 놈...
1249년 고려의 집권자가 최항으로 바뀌었다.
후계분쟁을 마무리한 몽케가 즉위하자마자 고려에 출륙 환도 및 고종의 친조를 요구했다.
그런데 고려는 최항이 집권하긴 하였으나 얘가 권력기반이 약해서 정적들을 숙청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다.
최우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창기의 자식이 권력을 이었으므로 최우의 정책을 버리긴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몽케의 요구를 아런저런 사기로 피해가던 중 몽케의 인내가 바닥났다.
1253년 예케를 시켜 대거 침입을 한 것이다.
최항은 강화도에서 웅크리고 앉아 꼼짝도 안했고 고려는 또 다시 겁탈을 당하였다.
그런데 이번엔 충주성에 환속한 김윤후가 버티고 있었다.
김윤후가 이번에도 몽골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김윤후는 1253년 충주성 방호별감으로 재직 중 이었다.
대대적인 남진을 하던 몽골군이 충주성에 도달하였고 혈투가 시작되었다.
김윤후는 군량이 떨어지고 사기가 저하되자 관청에 보관된 노비문서를 불사르고 몽골군에게서 빼앗은 소와 말등을 사람들에게 나눠줘 사기를 이끌어 냈다.
이렇게 70여일을 끌자 몽골군도 퇴각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처인성 전투도 그랬지만 충주방어전의 주역도 노비, 승려, 백성들이었다.
특히 충주성에서는 이전 최가정권의 실정으로 반감이 높은 사람들을 이끌고 승리를 하였다는 것이 더 대단하다.
이 냥반 친화력과 설득력이 발군이었던 모양이다.
충주성에서 발목이 잡힌 몽골군에게 또 하나의 악재가 발생하였다.
예케가 병이 난 것이다.
병이난 예케를 구슬리기 위해 고종은 강도를 나와 사신을 친견하였고
안경공 창을 몽골에 입조시켜 철병을 이끌어 내었다.
그런데 몽케가 이 항복조건에 만족하지 않고 고종에게 최항을 대동하여 입조하라고 명령을 한다.
안경공 창의 신분에 의구심을 가진 것이다.
왕자가 아니라 친척임을 알게된 몽케는 창을 닥달했고 창은 친자가 맞다고 우기고.
에이 골 아프니 왕이 직접 들어와라 이렇게 된 것이다....쩝..
하필 이때 고려에는 매국노 이현을 바다에 던져버리는 일이 발생했고..
다시 전쟁이 발발한다..
몽케가 자랄타이에게 대군을 주어 침입을 시키니...
1254년 6차 침입이다...징한 놈들...아주 지랄같은 놈들이다.. 최충헌이... 이런 놈들하고 인연을 맺게 만들다니....죽일 놈
자랄타이...이름같이 지랄같은 놈이었다.
전직 승려 김윤후가 버틴 충주성과, 김윤후의 데자뷰 홍지대사가 버틴 상주산성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을 쓸고 다니며 5게월 동안 엄청난 살육을 자행하였다.
포로만 20만이 넘었고 살상자는 셀수가 없었다 한다.... 인간 백정같은 놈...
이 염병할 놈이 다음 해에 또 침입을 하였다...7차 침입이다.
이번에도 희대의 죽일 놈 홍복원이도 대동하고....
이 쳐죽일 놈들이 전라도를 쑥밭으로 만들고 강화도에 침입하려할 때
다행인지 불행인지 고려는 몽케를 설득하는데 성공하고 몽골은 서경으로 물러간다...
이때 해전이 발생하였는데 고려의 해군은 패배하고 지역의 해적들은 승리하는 웃지못할 일이 발생한다.
최충헌 최우 최항.....병신새끼들이다.
그리고 1257년 최항이 죽었다
갑자기 죽었다는 것을 보니 독살이었을 것이다.
애비를 닮아 글을 잘썼다 한다.
0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
[마루밑다락방의 서고] 초승에 뜨는 달은 ‘초승달’이 옳다. 물론 이 단어는 ‘초생(初生)’과 ‘달’이 합성한 경우이나, 어원에서 멀어져 굳어진 경우 관용에 따라 쓴다는 원칙에 따라, ‘초승달’이 올바른 표현이다. 마치 ‘폐렴(肺炎), 가난(艱難)’ 등과도 같은 경우이다.2015-05-25
-
[인문학] 아일랜드... 예이츠의 고향. 가장 늦게 도달한 기독교(카톨릭)에 가장 심취하였고 중세 수도원 운동이 크게 부흥하여 역으로 대륙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곳... 중국보다 성리학에 더 미쳤던 한국..자본주의의 실험재료가 되어, 자국의 식량이 부족하여 백성은 굶어죽는데도 영국으로 식량을 수출해야 했던 나라. 맬더스 인구론의 근거가 됐었고.. 영국의 식민지였으며 분단의 아픔을 격고 있는 나라.. 참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은 나라입니다.2015-04-16
-
[인문학] 러셀... 현대의 소크라테스...2015-04-15
-
[인문학] 비극적이고 치명적인 대가를 치른 후였다.-------------전이겠지요.2015-04-09
-
[인문학] 신영복 교수... 진정 겸손한 글을 쓰는 분이지요.소외 당한 자, 시대의 약자들에 대한 이해가 깊은 분이고. 그들을 대변 또는 위로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작가들 중의 하나이지요.2015-04-08
-
[인문학] 좋군요....2015-04-07
-
[인문학] 과학이 본연의 임무대로 오류들을 이리저리 쳐내가다 보니 알맹이가 하나도 안 남은 형국이되었습니다. 그러니 과학 때문에 목적을 상실했다는 말이 나왔고, 도구에 불과한 과학이 미움을 받는 묘한 지경이 되었습니다만... 그게 과학의 잘못은 아니지요. 만들어진 요리가 맛이 없는게 잘드는 칼의 잘못입니까? 재료가 형편없었던 까닭이지요.2015-04-05
-
[인문학] 물론 ‘목적 없는 세계’라는 아이디어가 ‘신앙의 부재’와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겠지만, 어떤 목적으로 움직이는지 회의를 주는 세계는 신앙심을 약화시키는 무신론을 철저히 방조하고 있음엔 틀림없는 것 같다. -------------음... 아직 옛날 습관이 남아있는 어투이군요...전지전능의 무한자는 인간이 알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즉 불가지의 존재이지요. 이 불가지의 존재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도 당연히 불가지입니다. 과학은 이 불가지의 세계를 다루지 않습니다. 그랫다가는 오컴에게 면도날로 난도질 당합니다. ㅋㅋㅋ2015-04-05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