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꾼 인물 또는 사건] 공산당 선언 1
2015-07-02 17:53
13,261
0
0
본문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중세의 농노로부터 초기 도시의 자유민이 생겨났고, 이 시민층으로부터 부르주아의 첫 번째 요소들이 발전했다.
구 유럽의 모든 세력들, 즉 교황과 차르, 메테르니히와 기조, 프랑스의 급진파와 독일의 경찰이 이 유령을 사냥하려고 신성 동맹을 맺었다.
반정부당치고, 정권을 잡고 있는 자신의 적들로부터 공산당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은 경우가 어디 있는가?
또 반 정부당치고, 더 진보적인 반정부당이나 반동적인 적들에 대해 거꾸로 공산주의라고 낙인찍으며 비난하지 않은 경우가 어디 있는가?
이 사실로부터 두 가지 결론이 나온다.
공산주의는 이미 유럽의 모든 세력들에게서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제 공산주의자들이 전 세계를 향해 자신의 견해와 자신의 목적과 자신의 경향을 공개적으로 표명함으로써,
공산주의의 유령이라는 소문을 당 자체의 선언으로 대치해야할 절호의 시기가 닥쳐왔다.
이러한 목적으로 다양한 국적을 가진 공산주의자들이 런던에 모여서 다음과 <선언>을 입안하고 그것을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플랑드르어와 덴마크어로 발간한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자유민과 노예, 귀족과 평민, 영주와 농노, 동업 조합의 장인과 직인, 요컨대 서로 영원한 적대 관계에 있는 억압자와 피억압자가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공공연하게 끊임없는 투쟁을 벌여 왔다.
그리고 이 투쟁은 항상 사회 전체가 혁명적으로 개조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투쟁하는 계급들이 함께 몰락하는 것으로 끝났다.
예전에는 역사상의 각 시기마다 거의 어디서나 사회가 각종 신분으로 완전히 분열된 상태인 각종 사회적 위계질서가 발견됐다.
고대 로마에서는 귀족, 기사, 평민, 노예가 있었고,
중세에는 봉건 영주, 가신, 동업조합의 장인, 직인, 농노가 있었으며,
다시 이 계급들 하나하나가 전부 특수한 등급으로 나뉘어 있었다.
봉건 사회가 몰락하고 생겨난 현대 부르주아 사회 또한 계급 모순을 폐기하지 못했다.
이 사회는 다만 새로운 계급들, 억압의 새로운 조건들과 투쟁의 새로운 형태들을 낡은 것과 바꿔 놓은데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시대, 즉 부르주아의 시대는 계급 모순을 단순화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사회 전체가 두 개의 적대 진영으로, 즉 서로 대립하는 두 계급인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더욱더 분열되고 있는 것이다.
중세의 농노로부터 초기 도시의 자유민이 생겨났고, 이 시민층으로부터 부르주아의 첫 번째 요소들이 발전했다.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과 아프리카 회항로의 발견은 대두하는 부르주아에게 신천지를 열어주었다.
동인도와 중국 시장, 아메리카의 식민지화, 식민지와의 교역, 교환 수단과 상품량의 증가는 상업, 항해, 공업에 전례 없는 충격을 주었으며,
그리하여 무너져 가던 봉건 사회 안에서 혁명적 요소를 급격히 발전시켰다.
예전의 봉건적 또는 동업 조합적 공업 경영 방식은 새로운 시장과 함께 늘어난 수요를 더 이상 충족시킬 수 없었다.
그러나 조직을 대신한 것이 매뉴팩처였다.
동업 조함의 장인들은 매뉴팩쳐 공업에 종사하는 중간 계급에게 밀려났으며,
서로 다른 동업 조합 사이의 분업은 개별 작업장별로 이루어지는 분업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동안에도 시장은 더욱 넓어지고 수요는 계속 늘어났다.
이제 매뉴팩처도 이미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게 되었다.
이때 증기와 기계가 공업생산에 혁명을 일으켰다.
매뉴팩처의 자리를 현대적인 대공업이 차지하고,
공업에 종사하는 중간 계급의 자리를 공업에 종사하는 백만장자들, 대공업 군대의 우두머리들, 현대 부르주아들이 차지했다.
대공업은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으로 준비되고 있던 세계시장을 만들어 냈다.
세계 시장은 상업, 해운과 육상 교통의 거대한 발전을 가져왔다.
이러한 발전이 이번에는 거꾸로 공업의 확장에 영향을 끼쳤다.
공업, 상업, 해운, 철도가 확대되는 만큼 부르주아도 발전했으며,
부르주아는 자본을 늘림으로써 중세 때부터 내려오던 모든 계급들을 뒷전으로 밀어내 버렸다.
따라서 우리는 현대 부르주아 자체가 기나긴 발전 과정의 산물이며, 생산과 교환 방식에서 일어난 잇따른 변혁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부르주아의 이러한 각 발전 단계에 발맞추어 정치적 진보도 함께 이루어졌다.
봉건 영주의 지배 밑에서는 피억압 신분이었고 코뮌에서는 무장을 갖춘 자치 단체였으며,
어떤 곳에서는 독립한 도시 공화국(독일과 이탈리아에서와 같이), 또 다른 곳에서는 납세의무를 지닌 군주 국가의 제3신분(프랑스에서와 같이), 그리고 매뉴팩처의 시기에는 신분제 또는 절대 군주 국가의 귀족에 대항하는 세력,
즉 대 군주 국가 일반의 주된 토대였던 부르주아는 대공업과 세계 시장이 형성된 이래 현대의 대의제 국가에서 마침내 독점적인 정치적 지배권을 쟁취했다.
현대의 국가 권력은 부르주아 계급 전체의 공동 업무를 관장하는 위원회에 지나지 않는다.
부르주아는 역사에서 아주 혁명적인 역할을 해냈다.
부르주아는 자신들이 지배권을 획득한 곳에서는 어디서나 모든 봉건적, 가부장적, 목가적 관계를 파괴했다.
부르주아는 사람을 타고난 상전들에게 얽매어 놓고 있던 온갖 봉건적 속박을 가차 없이 토막 내 버렸다.
그리하여 사f람들 사이에는 노골적인 이해관계와 냉혹한 현금 계산 외에는 아무런 관계도 남지 않게 되었다.
부르주아는 종교적 광신, 기사적 열광, 속물적 감상 등의 성스러운 황홀경을 이기적인 타산이라는 차디찬 얼음물 속에 집어넣어 버렸다.
부르주아는 사람의 인격적 가치를 교환 가치로 해체했으며,
특허장으로 보장되거나 투쟁을 통해 얻어진 수많은 자유 대신에 단 하나의 파렴치한 자유, 즉 상거래의 자유를 내세웠다.
한마디로 부르주아는 종교, 정치적 환상에 의해 가려져 있던 착취를 공공연하고 파렴치하며 직접적이고 잔인한 착취로 바꾸어 놓았다.
부르주아는 지금까지 영예로운 것으로 생각되어 왔고 사람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보아 오던 모든 직업에서 그것들이 갖고 있던 후광을 빼앗았다.
그들은 의사, 법률가, 성직자, 시인, 학자들을 자신이 고용하는 임금 노동자로 만들어 버렸다.
부르주아는 가족 관계에서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감상의 껍데기를 벗겨 순전히 금전 관계로 바꿔 버렸다.
부르주아는 반동배가 중세에 그처럼 감탄해 마지않던 야만적인 힘자랑이, 게으름과 침체로 얼마나 적당히 보완되고 있었는가를 보여주었다.
그들이야말로 인간의 활동이 무엇을 이룩할 수 있는가를 처음으로 보여 주었다.
그들은 경탄할 만한 예술을 창조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로마의 수로(水路), 고딕식 성당과는 완전히 다른 기적이었다.
그들은 민족의 대이동이나 십자군과는 완전히 다른 원정을 해냈다.
부르주아는 생산 도구를 끊임없이 변혁하지 않고서는, 따라서 생산 관계와 더 나아가 사회관계 전반을 혁신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
반면에 종전의 산업에 종사하던 모든 계급들의 첫 번째 생존 조건은 낡은 생산 양식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 있었다.
생산의 계속적인 변혁, 모든 사회관계의 끊임없는 교란, 항구적인 불안과 동요가 부르주아 시대를 그 전의 모든 시대와 구별해 준다.
굳어지고 녹슬어버린 모든 관계는 그에 따르는 부산물들, 즉 아주 오래 전부터 존중되어 온 관념이나 견해와 함께 해체되며, 새로 생겨나는 모든 것조차 미처 자리를 잡기도 전에 이미 낡은 것이 되고 만다.
신분적인 요소와 정체된 것은 모두 사라지고, 신성한 것은 모두 모욕당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마침내 자기의 생활 상태와 서로간의 관계를 냉정한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된다.
자기 생산물의 판로를 끝없이 넓히고자 하는 요구는 부르주아로 하여금 지상의 모든 곳을 뛰어다니게 한다.
부르주아는 가는 곳마다 정착해야 하고, 가는 곳마다 뿌리를 내려야 하며, 가는 곳마다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
부르주아는 세계 시장을 이용하여 모든 나라의 생산과 소비를 범세계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반동배에게는 매우 비통한 일이었지만, 부르주아는 공업의 민족적 지반을 발밑에서부터 허물어 버렸다.
예로부터 내려오던 민족적 공업이 파멸되었거나 나날이 파멸되어 가고 있다.
이 민족적 공업은 새로운 공업, 즉 현지 원료를 가공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상의 가장 먼 지역에서 운반되어 오는 원료를 가공하고, 그 나라 안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소비되는 공산품을 만드는 공업에 밀려나고 있으며,
이 새로운 공업을 도입하는 것이 모든 문명국가의 사활의 문제가 되고 있다.
국산품으로 채워지던 옛 수요 대신에, 아주 멀리 떨어져 있으며 풍토도 아주 다른 여러 나라에서 온 생산물이 아니면 채워질 수 없는 새로운 수요가 생겨난다.
낡은 지방·민족적 단절과 국산품에 의존하던 생존 대신에, 민족들이 서로 전면적으로 교류하고 전면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나타난다.
이것은 물질적 생산에서나 정신적 생산에서나 마찬가지다.
각 민족의 정신 활동의 성과는 공동 재산이 된다.
민족적 일면성과 배타성은 더욱더 있을 수 없게 되고 수많은 민족·지방적 문학으로부터 하나의 세계 문학이 형성된다.
부르주아는 모든 생산 도구의 급속한 개선과 한없이 편리해지는 교통수단으로 모든 민족, 심지어는 가장 미개한 민족까지도 문명화한다.
그들 상품의 싼 가격은 모든 만리장성을 쳐부수고 외국인에 대한 야만인들의 집요한 증오까지도 여지없이 굴복시키고야 마는 무기다.
부르주아는 모든 민족에게 망하고 싶지 않거든 부르주아적 생산 양식을 채용하라고 강요하며, 이른바 문명을 받아들이라고, 즉 부르주아가 되라고 강요한다.
한마디로 부르주아는 자신들의 모습대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부르주아는 농촌을 도시의 지배 밑에 종속시켰다.
부르주아는 거대한 도시를 만들고 도시 인구를 농촌 인구에 비해 크게 늘림으로써, 인구의 대부분을 우매한 농촌 생활에서 건져 냈다.
부르주아는 농촌을 도시에 종속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미개국과 반(半)미개국을 문명국에, 농업에 종사하는 인민을 부르주아적인 인민에, 동양을 서양에 종속시켰다.
부르주아는 생산 수단, 재산, 인구의 분산 상태를 점점 없앤다.
그들은 주민을 집결시키고, 생산 수단을 집중시키며, 재산을 몇몇의 손에 집중시켰다.
그 필연적 결과는 정치의 중앙 집권 화였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 서로 다른 법률, 서로 다른 정부, 서로 다른 관세를 갖고 동맹 관계를 통해서만 겨우 연결되어 있던 독립적인 각 지방들이
하나의 정부, 하나의 법률, 하나의 국민적인 계급 이해를 갖고 하나의 관세 구역 안에 사는 하나의 국민으로 결합되었다.
부르주아는 100년도 채 못 되는 계급 지배 동안에 과거의 모든 세대가 만들어 낸 것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많고, 더 거대한 생산력을 만들어 냈다.
자연력의 정복, 기계에 의한 생산, 공업과 농업에서의 화학의 이용, 기선에 의한 항해, 철도, 전신, 세계 각지의 개간, 하천 항로의 개척, 마치 땅 밑에서 솟아난 듯한 엄청난 인구,
이와 같은 생산력이 사회적 노동의 태내에서 잠자고 있었다는 것을 과거의 어느 세기가 예감이나 할 수 있었으랴!
위에서 우리가 본 바와 같이, 부르주아를 형성시킨 토대인 생산 수단과 교환 수단은 봉건 사회 안에서 생겨난 것이다.
이 생산 수단과 교환 수단이 일정한 발전 단계에 이르자, 봉건 사회에서 통용되던 생산과 교환 관계, 농업과 공업의 봉건적 조직, 한마디로 봉건적 소유 관계는 발전한 생산력에 이미 맞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생산을 촉진하기는커녕 생산을 방해했으며, 따라서 그만큼 생산에 질곡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것은 분쇄되어야 했으며, 분쇄되고 말았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자유 경쟁과 그에 상응하는 사회·정치 제도, 즉 부르주아 계급의 경제·정치적 지배였다.
이와 비슷한 움직임이 우리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다.
부르주아적 생산관계와 교환 관계, 부르주아적 소유 관계, 마치 마술이나 부린 듯 그렇게도 강력한 생산 수단과 교환 수단을 만들어 낸 현대 부르주아 사회는 자기가 주문으로 불러낸 저승사자의 힘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된 마술사와도 같다.
지난 수십 년 동안의 공업과 상업의 역사는 현대의 생산 관계에 대한, 즉 부르주아의 존립과 그 지배 조건인 현대의 소유 관계에 대한 현대 생산력의 반항의 역사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면서 부르주아 사회 전체의 존립을 더욱더 위협하고 있는 상업 공황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상업 공황이 일어날 경우, 제조된 생산물뿐만 아니라 이미 이룩된 생산력의 상당 부분도 규칙적으로 파괴된다.
공황 때에는 일종의 사회적 전염병--과거의 모든 시대에는 터무니없는 일로만 보였을 과잉 생산이라는 전염병--이 널리 퍼지게 된다.
사회는 잠시 동안 야만 상태로 후퇴하여 마치 기근과 전면적인 파괴전이 모든 생활 수단을 쓸어 간 것같이 보이며, 공업과 상업이 전멸될 것같이 보인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사회가 너무나 큰 문명을 가지고 있고 생활 수단이 너무나 많으며, 너무나 큰 공업과 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사회가 가지고 있는 생산력은 이미 부르주아적 문명과 부르주아적 소유 관계가 발전하는 데 봉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이러한 소유 관계에 비하면 너무 방대해져서, 이제는 부르주아적 소유 관계가 생산력의 발전을 억제하게 된다.
그리고 생산력이 이 질곡을 극복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부르주아 사회 전체를 혼란 상태에 빠뜨리며 부르주아적 소유가 존립하는 것을 위태롭게 한다.
부르주아적 관계는 자신이 만들어 낸 부를 포용하기에는 너무도 협소해진 것이다.
부르주아는 어떠한 방법으로 이 공황을 극복하는가?
한편으로는 거대한 생산력을 어쩔 수 없이 파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을 새로이 넓히면서 기존의 시장을 더욱더 철저하게 착취하는 방법으로 극복한다.
그러면 결국 어떻게 되는가?
더욱더 광범위하고 더욱 파괴적인 공황을 준비하게 되며, 공황을 예방할 수단도 줄어들게 된다.
부르주아가 봉건 제도를 무너뜨릴 때 사용한 그 무기가 이제는 부르주아 자신에게 겨누어진다.
그러나 부르주아는 자신에게 죽음을 가져올 무기를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 무기를 자신에게 겨눌 사람들, 즉 프롤레타리아라는 현대의 노동자들도 만들어 냈다.
부르주아, 즉 자본이 발전하는 정도에 비례하여 프롤레타리아, 즉 현대의 노동자 계급도 발전한다.
현대의 노동자 계급은 일거리가 있을 때만 생존할 수 있으며, 그들의 노동이 자본을 늘려 주는 한에서만 일거리를 얻을 수 있다.
자신을 토막으로 나누어 팔지 않으면 안 되는 이 노동자들은 다른 온갖 판매품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상품이며, 따라서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경쟁의 모든 성패와 시장의 모든 변동에 내맡겨져 있다.
늘어가는 기계사용과 분업으로 말미암아 프롤레타리아의 노동은 자립적 성격을 모두 잃어버렸으며, 이와 더불어 노동자가 느낄 수 있는 온갖 매력을 잃어버렸다.
노동자는 기계의 단순한 부속품이 되고, 그에게 요구되는 것은 가장 단순하고 단조로우며 가장 배우기 쉬운 동작뿐이다.
따라서 한 노동자에게 지출되는 비용은 거의 모두 그 자신을 유지하고 자손을 번식시키는 데 필요한 생활 수단에 국한될 뿐이다.
그런데 모든 상품의 가격은 그 생산비와 같으며, 따라서 노동의 가격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노동의 지겨움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그만큼 임금이 줄어든다.
그뿐만 아니라 기계와 분업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노동 시간이 늘어나거나 정해진 시간 안에 해야 하는 노동이 늘어나거나 기계의 운전 속도가 빨라지거나 하여 노동의 양도 그만큼 늘어난다.
현대 공업은 가부장적인 장인이 지배하던 작은 작업장을 산업 자본가의 대공장으로 바꿔 놓았다.
노동자 대중은 공장에 집결하여 군대식으로 편성된다.
산업 군대의 병사인 노동자 대중은 수많은 장교와 하사관들로 이루어진 완전한 위계질서의 감시 밑에 놓인다.
그들은 부르주아 계급, 부르주아 국가의 노예일 뿐 아니라, 날마다 시간마다 기계와 감독, 무엇보다도 개별 부르주아 공장주에 의해 노예가 된다.
이 전제(專制) 제도는, 영리가 궁극적인 목적임이 노골적으로 선언되면 될수록 더욱더 인색하고 증오스러우며 잔인하게 된다.
육체노동에 필요한 기술과 힘이 점점 줄어들수록, 즉 현대 공업이 발전할수록, 남성 노동은 여성 노동과 아동 노동에게 더욱더 밀려난다.
성별과 연령별 차이는 노동자 계급에게 더 이상 아무런 사회적 의의도 갖지 못한다.
오직 연령과 성별에 따라 서로 다른 비용이 드는 도구로서의 노동자가 존재할 뿐이다.
노동자에 대한 공장주들의 착취가 끝나 드디어 노동자가 임금을 현금으로 받게 되면, 이번에는 부르주아의 다른 부분, 즉 집주인·상점주인·고리 대금업자 등등이 노동자들에게 달려든다.
지금까지의 소(小)중간 계급, 즉 소산업가, 소상인과 금리 생활자, 수공업자와 농민, 이 모든 계급들은 차츰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한다.
왜냐하면 한편으로는 그들의 소자본이 대규모 공업을 경영하기에 충분하지 못할 뿐더러 더 큰 자본가와 경쟁하는 데서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기술이 새로운 생산 양식으로 말미암아 쓸모없게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프롤레타리아는 인구 가운데 모든 계급들로부터 충원된다.
프롤레타리아는 여러 가지 발전 단계를 거친다.
부르주아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은 그들이 생겨나면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개별 노동자가, 그 다음에는 한 공장의 노동자들이, 또 그 다음에는 한 지방에 있는 같은 부문의 노동자들이 그들을 직접 착취하는 부르주아 개개인에 대항하여 투쟁한다.
노동자들은 부르주아적 생산 관계를 공격할 뿐만 아니라 생산 수단 자체도 공격한다.
그들은 경쟁하는 외국 상품을 파괴하며 기계를 파괴하고 공장을 불태움으로써 몰락해 버린 중세 노동자의지위를 되찾으려 한다.
이 단계에서 노동자들은 전국에 흩어진 채 서로 경쟁하는 대중을 이루고 있다.
노동자들의 대중적 결속은 아직 그들 자신이 단결한 결과가 아니라 부르주아가 단결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부르주아는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프롤레타리아 전체를 동원해야 했으며, 또 그때에는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 프롤레타리아는 자신의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적에 대한 적, 즉 절대 군주제의 잔재인 지주, 비(非)산업 부르주아, 소부르주아들과 싸운다.
그리하여 역사적 운동 전체가 부르주아의 손에 집중되고, 이렇게 얻어진 모든 승리는 부르주아의 승리가 된다.
그러나 공업의 발전으로 프롤레타리아의 숫자만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더 거대한 집단 속에서 한데 뭉쳐 세력이 커지며, 차츰 자신의 힘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기계가 여러 가지 노동 사이의 차이를 없애고 임금을 거의 어디서나 똑같이 낮은 수준으로 떨어뜨림에 따라 프롤레타리아 내부의 이해관계와 생활 상태는 더욱더 똑같아진다.
부르주아들 사이에서 격화해 가는 경쟁과, 이 경쟁으로 생겨나는 상업 공황으로 노동자의 임금은 더욱 불안정해진다.
기계가 점점 빠른 속도로 끊임없이 개선되면서 프롤레타리아의 생활 처지는 더욱더 불안해진다.
개별 노동자와 개별 부르주아 사이의 충돌은 점점 더 두 계급의 충돌이라는 성격을 띠게 된다.
노동자들은 부르주아들에 대항하여 결사체(즉 노동조합)를 조직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임금 수준을 유지하려고 뭉친다.
그들은 앞으로 충돌이 일어났을 때 먹고 살 것을 마련하려고 상설 단체까지 세운다.
따라서 투쟁은 폭동이 되기도 한다.
노동자들은 때때로 승리하지만 그 승리는 일시적일 뿐이다.
그들의 투쟁의 참된 성과는 직접적인 전과(戰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단결이 더욱더 넓혀지는 데 있다.
대공업으로 더욱더 발전해가는 교통과 통신 수단은 노동자들의 단결을 촉진하면서 각지의 노동자들을 맺어 준다.
이러한 연력이 이루어지기만 하면, 어디서나 같은 성격으로 벌어지고 있던 수많은 지방적 투쟁이 하나의 전국적 투쟁, 즉 계급투쟁으로 집중된다.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 투쟁이다.
빈약한 도로망을 가진 중세의 도시민들이 여러 세기에 걸쳐 이룩한 그 단결을, 현대 프롤레타리아는 철도 덕택에 몇 년 안에 이룩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들이 이처럼 계급으로, 따라서 정당으로 조직되는 일은 노동자 자신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경쟁 때문에 끊임없이 파괴된다.
그러나 이 일은 새롭게 거듭 일어나며 그때마다 더욱더 강하고 굳건하고 위력 있는 것이 된다.
이것은 부르주아 안의 알력을 이용하여 노동자들의 몇 가지 이해관계를 법적으로 승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 실례로 영국에서는 10시간 노동법이 통과되었다.
일반적으로 낡은 사회 안의 충돌은 많은 점에서 프롤레타리아의 발전 과정을 촉진한다.
부르주아는 끊임없이 투쟁을 해 왔다.
처음에는 귀족과 투쟁했고 나중에는 공업 발전에 대립하는 이해관계를 가진 일부 부르주아 층과 투쟁했으며, 그리고 언제나 외국의 부르주아 전체와 투쟁한다.
이 모든 투쟁에서 부르주아는 프롤레타리아에게 호소하고 그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으며, 그들을 정치 운동에 끌어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 부르주아는 자신들만이 누려 오던 정치·일반적 교양의 요소를, 즉 부르주아 자신에 대항할 무기를 프롤레타리아에게 제공한다.
더군다나 이미 우리가 본 바와 같이, 공업의 발전으로 지배 계급의 대부분이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하거나 최소한 그들의 생활 조건이 위협받는다.
이들 또한 프롤레타리아에게 계몽·진보적 요소를 대량으로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계급투쟁이 결전의 시기에 가까워지면 결국 지배 계급의 내부, 낡은 사회 전체의 내부에서 해체 과정이 아주 격렬하고 날카로운 성격을 띠는 까닭에, 지배 계급의 일부가 지배 계급에서 떨어져 나와 혁명적 계급, 즉 장래를 손안에 움켜쥔 계급에 가담하게 된다.
따라서 과거에 귀족의 일부가 부르주아에게로 넘어간 것처럼, 지금 부르주아의 일부, 특히 역사적 운동의 모든 과정을 이론적으로 이해하게 된 부르주아 이데올로그의 일부가 프롤레타리아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오늘날 부르주아와 대립하고 있는 모든 계급 가운데 오직 프롤레타리아만이 참으로 혁명적인 계급이다.
다른 모든 계급은 대공업이 발전하면서 몰락하여 멸망하지만, 프롤레타리아는 대공업 자체의 산물이다.
중간 계급들, 즉 소산업가·소상인·수공업자와 농민은 모두 중간 계급이라는 자신의 존재를 파멸에서 구하려고 부르주아와 투쟁한다.
따라서 그들은 혁명적이지 못하고 보수적이다. 아니 그들은 반동적이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려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혁명적으로 나온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이 머지않아 프롤레타리아로 넘어가게 될 것을 고려하는 한에서만,
그들이 현재의 이익이 아니라 장래의 이익을 옹호하는 한에서만,
그들이 프롤레타리아의 입장에 서려고 그들 자신의 입장을 포기하는 한에서만 그러하다.
낡은 사회의 최하층에 있는 수동적 부패물인 룸펜 프롤레타리아는 경우에 따라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해 운동에 끌려 들어오는 일도 있으나,
그들은 전반적인 생활 처지 때문에 반동적 모략에 매수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낡은 사회의 생활 조건은 프롤레타리아의 생활에서 이미 씨가 말라 버렸다.
프롤레타리아에게는 재산이 없다.
처자에 대한 그들의 관계 또한 부르주아적 가족 관계와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현대의 공업 노동, 즉 오늘날 영국·프랑스·미국·독일 할 것 없이 어디서나 마찬가지인 자본에 대한 현대적 예속은 그들에게서 민족적 성격을 모두 빼앗아 버렸다.
법률, 도덕, 종교, 그 밖의 모든 것이 그들에게는 부르주아적 편견에 지나지 않으며, 그 배후에는 그만큼 부르주아적인 이해관계가 가려져 있는 것이다.
이전의 모든 지배 계급들은 지배권을 장악한 뒤, 사회 전체를 그들의 소득을 보장하는 조건들에 종속시킴으로써 이미 얻은 지위를 굳히고자 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는 지금까지의 자신들의 전유(專有, Aneignung) 양식을 폐지하고 그와 함께 지금까지의 모든 전유 양식도 폐지함으로써만 사회적 생산력을 장악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에게는 보호해야 할 자기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지금까지 사적 소유를 보호하고 보장해 온 것들을 모두 박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운동은 소수의 운동이었거나 소수의 이익을 위한 운동이었다.
프롤레타리아 운동은 압도적 다수의 이익을 위한 압도적 다수의 자주적 운동이다.
요즘 사회의 최하층인 프롤레타리아는 공적(公的) 사회를 이루고 있는 겹겹의 상부 구조 전체를 폭파하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도 없고 허리를 펼 수도 없는 것이다.
부르주아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은, 내용상으로는 그렇지 않으나 형식상으로는 우선 일국적(national)이다.
각국의 프롤레타리아는 당연히 먼저 자기 나라의 부르주아를 쓸어 버려야 한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발전의 가장 일반적인 단계들을 서술함으로써, 다소간 가려져 있는 기존 사회 내부의 내란이 공개적인 혁명으로 바뀌고,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를 폭력으로 타도하여 자신의 지배권을 확립하게 되는 데까지 고찰했다.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는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억압하는 계급과 억압받는 계급의 적대 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한 계급을 억압하자면 최소한 억압받는 계급이 적어도 노예적 생존을 유지할 만큼의 조건은 보장되어 있어야 한다.
농노제 밑에 있던 농노는 코뮌 성원으로 올라섰으며, 봉건적 절대주의의 속박 밑에 있던 소부르주아는 부르주아로 올라섰다.
이와 반대로 현대 노동자는, 공업의 발전과 함께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계급적 생존 조건 이하로 더욱더 떨어지고 있다.
이것은 부르주아가 더 이상 사회의 지배 계급으로 남아 있을 수 없게 되는 것과 자기 계급의 생활 조건을 규제적인 법률로서 사회 전체에 강요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부르주아가 지배할 능력이 없는 이유는 부르주아가 자신의 노예들에게 노예적 생활수준조차 보장해 줄 능력이 없기 때문이며,
그들의 부양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스스로 그들을 부양해야 할 만큼 그들을 딱한 처지에 빠뜨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는 더 이상 부르주아의 지배 밑에서 살아갈 수 없다. 즉 부르주아의 존립은 더 이상 사회와 양립할 수 없다.
부르주아 계급이 존립하고 지배하기 위한 가장 본질적인 조건은 부가 개인의 손안에 쌓이는 것, 즉 자본이 만들어지고 늘어나는 것이다.
자본주의 존재 조건은 임금 노동이다.
임금 노동은 노동자 서로간의 경쟁 위에서만 유지된다.
부르주아가 싫든 좋든 촉진하지 않을 수 없는 공업의 진보는 경쟁에 의한 노동자들의 고립 대신에 연합에 의한 그들의 혁명적 단결을 가져온다.
이처럼 대공업의 발전과 더불어 부르주아가 생산물을 생산하고 점유하는 기반 자체가 부르주아의 발밑에서 무너져 간다.
부르주아는 다른 무엇보다도 자신의 무덤을 파는 일꾼을 생산하는 셈이다.
부르주아의 멸망과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는 다 같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0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
[마루밑다락방의 서고] 초승에 뜨는 달은 ‘초승달’이 옳다. 물론 이 단어는 ‘초생(初生)’과 ‘달’이 합성한 경우이나, 어원에서 멀어져 굳어진 경우 관용에 따라 쓴다는 원칙에 따라, ‘초승달’이 올바른 표현이다. 마치 ‘폐렴(肺炎), 가난(艱難)’ 등과도 같은 경우이다.2015-05-25
-
[인문학] 아일랜드... 예이츠의 고향. 가장 늦게 도달한 기독교(카톨릭)에 가장 심취하였고 중세 수도원 운동이 크게 부흥하여 역으로 대륙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곳... 중국보다 성리학에 더 미쳤던 한국..자본주의의 실험재료가 되어, 자국의 식량이 부족하여 백성은 굶어죽는데도 영국으로 식량을 수출해야 했던 나라. 맬더스 인구론의 근거가 됐었고.. 영국의 식민지였으며 분단의 아픔을 격고 있는 나라.. 참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은 나라입니다.2015-04-16
-
[인문학] 러셀... 현대의 소크라테스...2015-04-15
-
[인문학] 비극적이고 치명적인 대가를 치른 후였다.-------------전이겠지요.2015-04-09
-
[인문학] 신영복 교수... 진정 겸손한 글을 쓰는 분이지요.소외 당한 자, 시대의 약자들에 대한 이해가 깊은 분이고. 그들을 대변 또는 위로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작가들 중의 하나이지요.2015-04-08
-
[인문학] 좋군요....2015-04-07
-
[인문학] 과학이 본연의 임무대로 오류들을 이리저리 쳐내가다 보니 알맹이가 하나도 안 남은 형국이되었습니다. 그러니 과학 때문에 목적을 상실했다는 말이 나왔고, 도구에 불과한 과학이 미움을 받는 묘한 지경이 되었습니다만... 그게 과학의 잘못은 아니지요. 만들어진 요리가 맛이 없는게 잘드는 칼의 잘못입니까? 재료가 형편없었던 까닭이지요.2015-04-05
-
[인문학] 물론 ‘목적 없는 세계’라는 아이디어가 ‘신앙의 부재’와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겠지만, 어떤 목적으로 움직이는지 회의를 주는 세계는 신앙심을 약화시키는 무신론을 철저히 방조하고 있음엔 틀림없는 것 같다. -------------음... 아직 옛날 습관이 남아있는 어투이군요...전지전능의 무한자는 인간이 알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즉 불가지의 존재이지요. 이 불가지의 존재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도 당연히 불가지입니다. 과학은 이 불가지의 세계를 다루지 않습니다. 그랫다가는 오컴에게 면도날로 난도질 당합니다. ㅋㅋㅋ2015-04-05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