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네그로-오스만 전쟁
본문
전쟁 당시 츠르나고라군의 군기
츠르나 고라-오스만 전쟁(Црногорско-турски рат)은 1876~78년 오스만제국과 몬테네그로 공국 사이에 발발한 전쟁으로 츠르나 고라의 승리로 끝난 전쟁이다. 크게 보면 대 오스만 전쟁(1876~1878)의 일부라 할 수 있다.¹
헤르체고비나에서 오스만제국에 대항하는 반란과 봉기들이 연달아 발생하자, 몬테네그로와 세르비야는 1876년 6월 18일 대오스만 선전포고에 합의했고 전쟁은 시작되었다. 츠르나 고라는 헤르체고비나인들과 동맹을 맺어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자 하였다. 니콜라 공의 몬테네그로군은 부치도 전투를 기점으로 1877년 알바니아와 헤르체고비나의 접경지역에서 오스만군을 상대로 큰 규모의 전투를 치루었다. 그 해 말부터 반격에 나선 몬테네그로는 바르, 닉시치 등을 비롯한 인근 지역을 공략하였다.
1878년 1월 30일 에디르네 조약과 같은해 3월의 산 스테파노 조약은 전쟁의 종결을 뜻했다. 산 스테파노 조약의 결과, 몬테네그로, 루마니아, 세르비아의 독립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비록 베를린 조약(1878.7)에서 영토와 세력의 변화가 있었지만, 몬테네그로의 영토는 기존의4,405km²에서 9,475km²로 늘어났으며, 해안지대와 헤르체고비나를 포함하였다.
2년을 끌어온 전쟁은 몬테네그로 인들에게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 주교군주정 때²부터 갈망했던-사바를 제외한 블라디카들은 몬테네그로의 독립을 위해 유럽 각국에 지지를 요청하며 오스만 중앙에 반기를 들지 않았던가- 독립이 이루어졌다. 둘째, 고토인 해안부를 수복함으로써 바다와 접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15세기 중엽 몬테네그로 지역을 지배한 츠르노예비치 가문이 오스만제국에 항전하고자 해안에서 산중의 체티네로 피란하였다. 이후 해안은 오스만의 영토였는데, 3~400년 만에 몬테네그로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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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76년~78년 사이의 '전쟁'을 대 오스만 전쟁이라 칭하였다. 전쟁에서 러시아라는 외세의 간섭이 큰 역할을 담당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나, 그 이면 속에 1876년부터 시작된 발칸 제 민족(세르비아, 불가리아, 몬테네그로, 루마니아)의 독립투쟁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러시아만이 전쟁의 주인공이 아니며, 기존의 러시아-투르크 전쟁이란 명칭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2. 1696년 몬테네그로인, 정확히 말해 현 몬테네그로 지역에 살고 있었던 여러 부족들이 대투르크 전쟁으로 오스만의 힘이 소진된 사이 반란을 일으켜 다닐로 1세를 수반으로 한 주교군주정을 수립했다. 하지만, 말이 주교군주정이지 그 형태를 만든 주체가 부족들이었기 때문에 주교공(주교군주정의 최고 수반)의 권력은 약할 수밖에 없었다. 제정일치의 주교군주 체제라 해서 주교공이 모든 권한을 진다 함은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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