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다닐로 1세(Данило I Шћепчеви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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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닐로 스체브체비치(스르비야 키릴문자:Данило Шћепчевић, 1670~1735. 1. 11)는 1696년부터 1735년 사망할 때까지 체티네의 대주교로 있었으며, '세르비아의 통치자(vojevodič srpskoj zemlji)' 로 불리어진다.
유년시절
다닐로 스체브체비치는 녜고쉬(njegos) 마을에서 헤라코비치족 출신인 부친 스테판과 모친 안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래 그의 성씨는 스체브체비치(Шћепчевић)였지만, 만년에 접어들면서 페트로비치(Петровић)를 썼었다고 한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다닐로가 출생한 녜고슈 마을과 그가 말년에 쓰던 성씨 '페트로비치'가 결합되어 '페트로비치-네고슈(petrovic-njegos)가 된 듯 싶다. 이 페트로비치-네고슈 가문은 1696년부터 1918년까지 츠르나 고라를 통치하였다.
주교군주로 등극하다.
1696년 대투르크 전쟁으로 오스만 제국이 벽지 몬테네그로에 신경쓸 여럭이 사라지자, 몬테네그로의 부족들은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은 성공하여 부족들은 회의에서 다닐로 스체브체비치를 체티네 대주교 겸 세속의 지도자로 선출하였다. 이후 다닐로 본인이 '페트로비치 가문 출신이 정치/교회의 수장을 맏는다'는 원칙을 세우면서, 주교군주정의 틀이 형성되었다. 주교군주(vladika, 블라디카) 직은 페트로비치-네고슈 가문이 1852년 폐지될 때까지 맡게 된다.
그가 츠르나 고라의 주교군주로 등극했을 시기에 세르비아 정교회는 분열되어 있었다. 일찍이 페치의 총대주교 아르센니예 3세가 대규모의 세르비아인들을 이끌고 합스부르크 군주국령 카를로비츠로 망명하였다. 이후 총대주교직은 칼리니크 1세가 이어받는데, 그렇게 되자 세르비아 정교회에 속해 있던 체티네 대주교구는 곧 '망명교회' 쪽으로 기울었다. 1700년에 다닐로 1세는 페치의 종교회의에 불참한 대신 합스부르크 군주국령 헝가리 남부 카를로비츠의 종교회의에 참석하여, 새로이 세르비아 교회의 중심지가 된 카를로프치의 아르센니예 3세(Арсеније III)에게 츠르나 고라 지역의 대주교로 공식 인정받았다.
재위기간
주교군주로 즉위한 다닐로의 치세 초기에 특기할 만할 사건이 1702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다닐로가 자신의 위협세력인 츠르나고라 내의 이슬람교도를 학살한 사건이다(몬테네그로 저녁예배사건). 이 외에도 부족사회에 근접했던 츠르나고라 내부의 분쟁을 해결했으며, 오스만 제국에 대해 강경책으로 일관하였다. 1711년 헤르체고비나인과 제휴한 그는 오스만 제국에 맞서 봉기를 일으켰다. 이에 오스만은 츠르나 고라 영내로 침략했으나, 1712년 차레블라츠에서 패전을 면치 못했다. 오스만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츠르나 고라에 침략하여 1714년 수도 체티네(Цетиње)까지 함락시키는 등의 기염을 토해냈다. 이때 체티네의 수도원들이 전소되는 참화를 겪었다.
1715년 다닐로는 러시아 차르 표트르 1세를 만나 처음으로 몬테네그로-러시아 관계를 수립하였다. 이후 그는 오스만 제국에게서 제타를 회복했고, 이전의 침략으로 인해 파괴된 체티네의 수도원을 복구하였다. 또한 자신의 여름 별장인 부드바의 포도스토로그-포마이네 수도원(1630년에 건축됨)을 요새화하였다. 여기에 베네치아 공화국의 원조 역시 한몫하였고(체티네 재건), 그 대신 베네치아는 코트르 만의 사용권과 포교권의 자유를 획득하였다(1718.5)
츠르나고라 주교군주국은 세습제이긴 하지만 보편적인 부자세습이 아닌 친척세습(親戚世襲)의 형태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페트로비치 가문이 정치와 교회의 수장을 맡지만, 주교군주(主敎君主)는 결혼이 불가능하며 자식을 가질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닐로 1세 페트로비치-네고슈는 자신의 후계자로 바실리예와 사바를 염두에 두고 있다가, 최종적으로 사바를 자신의 후계자로 채택했다. 다닐로는 사바에게 주교군주로써의 덕목을 갖추도록 하였고, 1735년 그의 여름 별장인 포드마이네 수도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의 뒤를 이어 사바 페트로비치(Сава Петровић)가 주교군주로 등극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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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츠르나고라는 1696년-1878년까지 반독립 자치 상태로 있었으며 1852년까지 신정체제, 그 이후는 세속화된 체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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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오랫동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면서 사람들이 소형 커뮤니티(메이 뿐만 아닌 타 커뮤니티들까지 포함한다)의 생존을 위해 하나로 뭉칠 생각은 염두에 없는건지 모르겠고....당장의 이익만 추구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더군요. 아쉬우면서도 인터넷세상 경험을 해볼수 있어 좋았습니다. 다음에 연을 이어나가길 바라며.........2016-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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